KakaoTalk_20240809_201129081.png 청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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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효숙
SUNG Hyo Sook
 
성효숙_1.jpg
네 번 개인전을 했는데 현실 얘기들이 많아요. 첫 개인전은 ‘헌화가’라는 작업으로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꽃을 바치고 싶다는 의미에서 했고. 그 다음 두 번째 개인전이 ‘애도’였어요. 그때 큰일을 겪은 게 있어서 (원래 작품명인 ‘천불천탑’에서) ‘애도’로 바꿔 소창 천으로 하는 작업을 했고 개인적인 애도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애도도 함께 한 거죠. 세 번째 개인전은 4공단 노동조합에 관여하면서 알았던 콜트악기 노동조합이 있었는데 저는 1987년과 1988년에 관여를 했었고 당시 1980년대 있었던 노조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노조와 스쾃 작업을 같이하게 되었어요. (공장 작업실을) 제 작업실로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보면 행복했고 그렇지만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고, 언제 폭력이 들어올지도 모르는 위기의 상황도 있었어요. 그때 했던 작업들이 작업화들로 만든 < 진혼 >과 < 새벽 세시 >가 있습니다. 개인전 이후에 공장 자체가 다 파괴가 돼요. 다 파괴된 이후에 경찰에 끌려가기도 하고 파괴되어서 앞에 천막 치고 농성도 했는데 이런 사실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 종로나 광화문에서 작업을 같이하기도 하고, 이런 과정 전시로 네 번째 개인전을 했습니다. 네 번째 개인전 제목을 ‘새벽 세시’로 했어요. 그 후 제가 부산 비엔날레 때 1층을 < 진혼 >으로 하고 3층을 < 새벽 세시 >로 방 전체를 썼어요. < 진혼 >에서 < 새벽 세시 >로의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인천아트아카이브 'ORAL HISTORY'의 구술채록 인터뷰 중에서



바다 생명 만다라 | 폐현수막 외 혼합재료 | 2022

I've had four solo exhibitions, and many of them revolve around real-life stories. My first solo exhibition was titled Offering Flowers (Heonhwaga), which I dedicated to those who are actively working on the front lines to bring about change in the world. The second exhibition was Mourning (Aedo). I had experienced a significant event in my life during that time, so I changed the original title, A Thousand Buddhas, A Thousand Pagodas (Cheonbul Cheontap), to Mourning. This exhibition involved working with small cotton cloths, and it encompassed not only personal grief but also a collective, societal mourning.The third exhibition was connected to my involvement with the labor union at the 4th Industrial Complex, where I became aware of the Cort Guitar labor union. I had been involved with the union in 1987 and 1988, and it was one of the last remaining unions from that era. I collaborated with them on a squat project, using the factory as my workspace. While I felt fortunate to have the freedom to use the space as my studio, it was a time filled with constant tension. We never knew when we might be evicted or when violence might erupt. During that period, I created works such as Requiem (Jinhon) and 3 AM (Saebyeok Seshi). After my solo exhibition, the factory was completely demolished. Following its destruction, I was detained by the police, and we staged protests in tents outside the site. To raise awareness of these events, we also conducted collaborative art projects in places like Jongno and Gwanghwamun. My fourth solo exhibition documented this process and was titled 3 AM (Saebyeok Seshi).Later, during the Busan Biennale, I used the first floor to display Requiem (Jinhon) and the third floor to showcase 3 AM, utilizing entire rooms for each work. I performed a transition from Requiem (Jinhon) to 3 AM (Saebyeok Seshi) as part of the exhibition.
-presented as if it were from an "ORAL HISTORY" interview from the Incheon Art Archive

성효숙_2.jpg
바다 생명 만다라 | 가변 크기 | 폐현수막, 스치로폼 외 | 2022
최근 환경 생태 작업에 대해

최근에는 인천에 날아오는 멸종되는 저어새 관련 작업 (하고 있습니다). 해양 환경 문제로 목포, 신안을 시작으로 내년 2월부터 신안에서 그룹전을 합니다. 군산, 인천, 삼척 이런 식으로 순회 전시를 할 생각이고, 또 환경 생태 문제 관련해서는 저어새를 주로 했지만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면서 올해 새만금 문제로도 작업했었습니다. 연장선상에서 환경생태 문제가 인천의 문제일 수도 있고 요즘에 코로나19로 인류의 위기일 정도로 전 세계가 심각한 상황이라, 제 작업 방향도 예전에는 노동 쪽이 가장 힘들고 소외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처럼 최근 작업도 그런 맥락입니다. 예전에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소외와 불평등에 대한 것이었는데, 저의 세계관이 바뀌고 우주관이 바뀌면서 생물 다양성이라는 것 역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이 살아야 할 곳을 침범하고 사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어요. 노동문제가 갑자기 다가온 게 아니고 점차 지속해서 쌓인 것처럼, 환경생태 문제도 코로나19 이전에 (환경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다 보니 제 고민과 맞아떨어져서 그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아트아카이브 'ORAL HISTORY'의 구술채록 인터뷰 중에서